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영업비밀이나 개인의 민감한 정보가 담긴 서면이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런 자료들이 소송 상대방이나 제3자에게 무분별하게 공개된다면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 법은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여 소송 중 비밀을 보호하는 여러 제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대표적인 두 가지 제도인 민사소송법상 열람 등 제한 신청과 부정경쟁방지법상 비밀유지명령을 중심으로, 그 밖의 관련 제도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민사소송법상 소송기록 열람 등 제한 신청
가. 제도의 개요
민사소송이 진행되면 소장, 준비서면, 각종 증거서류 등이 소송기록으로 법원에 보관됩니다. 원칙적으로 당사자는 물론 이해관계를 소명한 제3자도 이 소송기록을 열람하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송기록에 민감한 개인정보나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를 위해 민사소송법 제163조는 일정한 요건이 갖추어진 경우, 법원이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소송기록 중 비밀이 적혀 있는 부분의 열람·복사 등을 신청할 수 있는 자를 당사자로만 한정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163조 제1항).
나. 신청 요건
열람 등 제한 신청이 인정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민사소송법 제163조 제1항).
1) 사생활의 중대한 비밀
소송기록 중에 당사자의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이 적혀 있고, 제3자에게 그 부분의 열람 등을 허용하면 당사자의 사회생활에 지장이 클 우려가 있는 경우입니다.
2) 영업비밀
소송기록 중에 당사자가 가지는 영업비밀이 적혀 있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영업비밀'이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에서 정한 영업비밀, 즉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기술상·경영상의 정보를 의미합니다(민사소송법 제163조 제1항 제2호).
대법원은 이 영업비밀의 개념을 부정경쟁방지법상의 영업비밀 개념과 동일하게 해석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20. 1. 9. 선고 2019마6016 결정). 또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소명하는 자료가 없다면 열람 등 제한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다. 신청 절차 및 효과
- 당사자가 법원에 서면으로 신청합니다.
- 신청이 있으면 그 신청에 관한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제3자는 해당 비밀 기재 부분의 열람 등을 신청할 수 없습니다(민사소송법 제163조 제3항).
- 신청을 기각한 결정에 대해서는 즉시항고를 할 수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163조 제5항).
- 이해관계를 소명한 제3자는 사유가 소멸되었음을 이유로 제한 결정의 취소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163조 제4항).
2. 부정경쟁방지법상 비밀유지명령
가. 제도의 개요
비밀유지명령은 영업비밀 침해 소송 등에서 소송 과정에 제출된 준비서면이나 증거에 포함된 영업비밀을 소송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공개하지 못하도록 법원이 명령하는 제도입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4 제1항).
이 제도는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며, 소송절차에서 제출되는 준비서면이나 증거에 의해 상대방 등에게 알려지는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정상조, 『부정경쟁방지법 주해[제2판]』, 박영사(2024년), 747-748면).
나. 신청 요건
비밀유지명령을 신청하려면 다음 두 가지 사유를 모두 소명해야 합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4 제1항).
1) 준비서면·증거에 영업비밀 포함
이미 제출하였거나 제출하여야 할 준비서면, 또는 이미 조사하였거나 조사하여야 할 증거에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을 것.
2) 소송 외 사용·공개 시 영업에 지장 우려
해당 영업비밀이 소송 수행 외의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공개되면 당사자의 영업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 또는 공개를 제한할 필요가 있을 것.
다. 명령의 대상자
비밀유지명령은 다음의 자에게 발령됩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4 제1항).
- 다른 당사자(법인인 경우 그 대표자)
- 당사자를 위하여 소송을 대리하는 자
- 그 밖에 해당 소송으로 인하여 영업비밀을 알게 된 자
라. 중요한 예외 — 이미 취득한 영업비밀
비밀유지명령 신청 시점까지 위 대상자들이 준비서면의 열람이나 증거조사 외의 방법으로 이미 해당 영업비밀을 취득하고 있는 경우에는 비밀유지명령을 발령할 수 없습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4 제1항 단서).
대법원은 이와 관련하여,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 자기의 영업비밀을 다른 당사자가 부정하게 취득하여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영업비밀에 대하여 한 비밀유지명령 신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15. 1. 16. 선고 2014마1688 결정). 즉, 피고가 이미 소송 외에서 원고의 영업비밀을 취득하였다고 원고 스스로 주장하는 경우, 그 영업비밀에 대한 비밀유지명령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마. 신청 절차 및 효과
- 신청은 ① 비밀유지명령을 받을 자, ② 영업비밀을 특정하기에 충분한 사실, ③ 요건에 해당하는 사실을 적은 서면으로 해야 합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4 제2항).
- 비밀유지명령은 결정서가 수명자에게 송달된 때부터 효력이 발생합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4 제4항).
- 신청을 기각·각하한 재판에 대해서는 즉시항고를 할 수 있습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4 제5항).
- 비밀유지명령을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의4).
바. 비밀유지명령의 취소
비밀유지명령을 신청한 자 또는 명령을 받은 자는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거나 갖추지 못하게 된 경우 소송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법원에 취소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3. 두 제도의 주요 차이점
| 구분 | 민사소송법상 열람 등 제한 | 부정경쟁방지법상 비밀유지명령 |
| 근거 법률 | 민사소송법 제163조 | 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4 |
| 적용 소송 | 모든 민사소송 | 영업비밀 침해 등 관련 소송 |
| 보호 대상 | 사생활의 중대한 비밀 또는 영업비밀 | 영업비밀 |
| 효과 | 제3자의 소송기록 열람·복사 제한 | 소송 당사자 등의 영업비밀 사용·공개 금지 |
| 명령 대상 | 제3자(당사자 외) | 상대방 당사자, 소송대리인, 소송으로 영업비밀을 알게 된 자 |
| 위반 시 제재 | 별도 형사처벌 규정 없음 | 형사처벌(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 |
핵심적인 차이는, 열람 등 제한은 소송기록에 대한 제3자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는 제도인 반면, 비밀유지명령은 소송 당사자 등이 소송 과정에서 알게 된 영업비밀을 소송 목적 외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제도라는 점입니다.
4. 그 밖의 관련 제도
가. 특허법·디자인보호법 등 지식재산권법상 비밀유지명령
부정경쟁방지법상 비밀유지명령과 유사한 제도가 특허법(제224조의3), 디자인보호법(제217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제35조의3), 개인정보 보호법(제39조의4), 발명진흥법(제55조의9) 등에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각 법률에서 정한 소송 유형에 따라 해당 법률의 비밀유지명령 규정이 적용됩니다.
나. 형사소송기록의 열람·등사 제한
형사재판이 확정된 사건의 소송기록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 제59조의2에 따라 검사가 일정한 경우 열람·등사를 제한할 수 있으며, 이에 불복하는 경우 법원에 처분의 취소 또는 변경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5. 마치며
소송은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영업비밀이나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노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에서 살펴본 제도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중요한 비밀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문의사항은 다음 담당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윤광훈 변호사 ( khyoon@weonlaw.co.kr )
'IT · 지식재산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IT] ‘허위조작정보’ 관련 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인하여 달라지는 점 (0) | 2026.07.13 |
|---|---|
| [IT] 크롤링 데이터 수집의 법적 문제 (0) | 2026.05.04 |
| [지식재산권] 내 상표·상호와 똑같은 도메인을 누군가 먼저 등록했다면? - 도메인 말소·이전 청구 완벽 가이드 (0) | 2026.04.22 |